칼럼
설계 없이
설계 없이
샤프를 들지 마라
2026-07-08 · SUHEL
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가장 흔한 실수는, 무엇을 할지 정하기도 전에 샤프부터 드는 것입니다. 일단 식을 세우고 계산을 시작하면 뭔가 하고 있다는 안도감이 들지만, 방향 없이 움직인 손은 대개 막다른 길에서 멈춥니다. 그리고 남은 건 지워야 할 계산과 줄어든 시간뿐입니다.
킬러라고 불리는 문제들의 상당수는, 사실 준킬러나 그 이하의 문제를 포장지만 어렵게 감싼 것입니다. 조건을 복잡하게 배치하고 숨겨 두었을 뿐, 그 조건들을 하나씩 분해해 읽어 내면 익숙한 구조가 드러납니다. 그래서 필요한 건 빠른 계산이 아니라, 발문을 끝까지 읽고 조건들을 조립해 풀이의 틀을 먼저 세우는 일입니다.
샤프를 들기 전에 스스로 물어보세요. 이 문제가 요구하는 건 무엇인가. 주어진 조건들은 각각 무엇을 하라는 신호인가. 어떤 순서로 사고를 전개해야 하는가. 이 설계가 머릿속에 서고 나서 계산으로 넘어가야, 손이 길을 잃지 않습니다.
문제를 읽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마세요. 발문을 천천히, 조건 단위로 나눠 읽는 그 몇십 초가 오히려 전체 풀이 시간을 줄입니다. 설계 없이 든 샤프는 빠른 게 아니라, 돌아가는 것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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